10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12 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13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14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묵상]
우리가 사는 시대는 ‘기다림’을 최소화하는 시대입니다. 기다림을 최소화 하는 데에는 그 기다림이 무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할 일이 많은 사회에서 ‘기다림’은 분명 무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생산적인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관계에서 기다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기다림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두 남녀가 서로에 대한 진심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기다림’입니다. 어려운 상황을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을 통해 서로의 사랑과 진심을 확인합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가장 많이 한 일이 바로 이 ‘기다림’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기다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심지어 비가 그치고 땅이 말랐던 그때도 방주로부터 당장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나오라’ 말씀하시기 전까지 기다렸습니다. 홍수와 같이 일생일대의 사건을 지나는 노아가 고작(?) 한 일은 ‘기다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노아의 기다림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기다림’이 무익한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많은 생산이 목적인 사회에서야 기다림은 무익한 것이지만, 사람은 단지 생산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한 인격이기 때문에 기다림은 유익합니다. 기다림 안에 ‘신뢰’, ‘사랑’ 과 같은 인격의 열매들이 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사랑하는 남녀의 예를 들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도 기다림입니다. 우리의 삶이 언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까?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신 그 사랑이 나의 모든 세월을 기다렸다는 사실을 만날 때 그 사랑을 깨닫습니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 나를 기다리셨다는 사실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다림은 우리의 존재가 기계와 같은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존재하는 시간들입니다. 그 시간들 사이로 우리가 자라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 바로 기다림입니다. 우리의 오늘, 이 기다림을 유익한 것으로 여기며 그 기다림 속에 인격의 열매들을 맺어가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맺으시는 아름다운 열매들은 늘 우리의 공식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신비 가운데 맺어짐을 봅니다. 오늘도 그 신비를 의지합니다. 기꺼이 기다리는 우리네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