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7월 12일
[본문말씀]
디모데후서 2장 20-21절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묵상]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그리고 질 그릇을 이야기 하며, 이 그릇들은 귀하게 쓰이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이는 것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 본문을 대했을 때 흔한 반응 중 하나는 “나도 금그릇이 되어 주인이 쓰시는 귀한 그릇이 되어야 겠다”입니다.
아마도 이렇게 금그릇이 되어야 귀하게 쓰임을 받을 것이란 생각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우리들에게 그렇게 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순위’를 매기고 ‘줄’을 세우는 세상입니다. 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1등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언젠가 그 1등도 1등이 될 수 없으며, 1등만 남는 세상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질그릇 보다는 나무 그릇이, 나무 그릇 보다는 은 그릇이, 은 그릇 보다는 금 그릇이 되라,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것이다’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는 지극히 우리가 사는 세상의 가치관을 투영해 해석한 것입니다.
그래서 21절을 보시면, 그릇의 주인이 그릇을 귀하게 쓰는 기준이 이렇게 등장합니다.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여러분, 그릇이 주인으로부터 귀하게 쓰임을 받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깨끗함”입니다. 이에 ‘무엇이 깨끗한 그릇이냐’라는 물음이 이어질 수 있겠으나, 이 질문은 잠시 미루어 두고 우선 확실한 것 한 가지를 정리해 보면, 주인이 귀하게 쓰는 그릇은 단순히 질 그릇 보다는 금 그릇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귀하게 쓰는 기준은 ‘순위’가 아니라 그 그릇이 어떠한 그릇이든지 간에 사용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금 그릇인가, 은 그릇인가 또는 질 그릇인가 보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인지 아닌지에 더 관심을 두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생각에는 금 그릇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용하실 것이다 생각할 수 있지만, 오늘 본문은 전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바울의 증언을 통해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는 고린도후서에서 우리라는 ‘질 그릇’에 보배이신 그리스도께서 담기셨다고 말합니다. 이로보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금 그릇인지 아닌지 보다, 그 그릇에 보배로우신 그리스도를 담았다는 사실에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금 그릇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설령 우리네 삶이 질 그릇과 같을지라도 우리네 삶에 담기신 그리스도가 계시니 이미 우리는 그릇으로서 모든 목적을 이룬 자들입니다. 그릇으로서 가장 큰 영예를 보배이신 그분을 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금 그릇이 되지 못했다는 자책이나 연민으로부터 벗어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담으신 그릇으로서 금이든, 은이든 나무든 질것이든 여러분 답게 용기내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현재 형편이 그 자체로 의미있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전부를 여러분의 삶에 담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금 그릇이 되어야만 가치있다 여기는 세상 한복판에서 더욱 주님으로 인해 우리 삶을 용기내어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