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제단 일곱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 하매 2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준비한 후에 발락과 발람이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라 3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나는 저리로 가리이다 여호와께서 혹시 오셔서 나를 만나시리니 그가 내게 지시하시는 것은 다 당신에게 알리리이다 하고 언덕길로 가니
[묵상]
표리부동.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의 한자어입니다. 이스라엘이 두려웠던 모압 왕 발락은 선지자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합니다. 그러나 발람은 그와 반대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데, 이에 크게 반발하는 발락을 향해 자신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말할 뿐”이라고 답을 합니다.
그 겉을 보아서는 ‘하나님의 선지자 발람’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금 발락의 곁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뜻과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저주 해 달라는 모압 왕의 요청을 이미 거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발람은 겉과 속이 다른 선지자로서, 참 신자들이 따르지 말아야 할 표본으로 등장합니다.
발람의 겉은 그럴 듯 합니다. 그러나 그의 속은 하나님과 정반대입니다. 이러한 발람의 모습은 사실 우리 역시도 얼마든지 닮을 수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도 겉으로는 얼마든지 하나님을 따르는 것 같이 행동하지만 그 속은 여전히 내가 바라는 것을 추구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지막에 쓴 편지 중 이렇게 말합니다. “말세가 되어 고통할 때가 이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들이 더 노골적이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이 여전히 ‘나 자신’이라면 우리의 삶을 바람과 같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표리부동. 겉으로는 얼마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 속은 결국에 내가 바라는 것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 말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것 같지만 그 속은 발락이 줄 삯을 그리며 말하는 발람 말이지요.
오늘 하루를 살 때, 말씀 앞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물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물으며 우리가 사랑하는 그 대상이 하나님 한 분이 될 수 있기를 구합시다.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볼 때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 하나님 한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나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더욱 알 수 있게 해달라 기도합시다. 그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더이상 겉과 속이 다른 신자가 아닌 겉으로도 또 속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 신자가 되게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겉과 속이 다른 발람과 같지 않게 하옵소서. 당신의 사랑을 알아 우리도 당신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