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묵상]
누구나 살아가는 중에 내 자신에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나도 내 자신이 못났다고 여기는 그때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이스라엘의 못남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눈에 모세가 보이지 않자, “눈에 보이는 신을 만들라”며 아론에게 요구를 합니다. 아론은 이스라엘에게 금을 거둬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를 “너희를 인도한 신”이라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금송아지로 만들어 섬기는 모습에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십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이스라엘이 아닌, 모세와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어찌보면, 이러한 하나님의 반응은 당연합니다. 금송아지 사건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이스라엘을 보며 혀를 찼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탕자의 형이 탕자를 보며 혀를 찬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공략(?)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생각해 볼 때,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이루심이 마땅하지 아니하십니까?”라고 말입니다. 이 장면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의 못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다시금 이스라엘에게 향하게 하는 ‘중보자’로 등장합니다. 물론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완전한 중보자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못난 모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을 향하는 데에 있어, 모세는 큰 역할을 합니다.
우리에게는 모세보다 더 완전한 중보자가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완전한 중보자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못남이 더이상 못남으로 남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완전하게 연결하는 중보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신다는 것은 우리의 못남이 더이상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좌절 시킬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신 이상, 그 무엇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우리의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실망하지 않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그 사랑은 우리의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 하나 좌절 되는 것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완전한 관계를 이루신 그리스도 안에서 오늘 하루도 담대하길, 용기내어 믿음의 여정을 걷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뜻이 우리 가운데 온전히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앞에 우리를 의인으로 세울,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 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