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5월 10일
[본문말씀]
고린도후서 12장 9-10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묵상]
고린도후서 12장은 11장에 이은 바울의 자랑이 이어집니다. 앞서 살핀 것과 같이 바울의 자랑은 바울이 자랑을 하기 위해 하는 자랑이 아니라, 자신을 비난하는 복음 전도자들의 자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변(辨)’과도 같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도 그 연장선인 것이지요.
바울은 자신이 경험했던 신비한 경험에 대해서도 자랑합니다. ‘지적인 영역에서만 자랑할 것이 있는게 아니라 영적인 영역에서도 자랑할 게 있다’는 게 바울이 이런 말을 하는 의도가 됩니다.
바울의 경험을 요약하면, ‘낙원에 가 사람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듣고 보았다’입니다. 이 짧은 구절 하나로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나 분명 대단하고 신비한 경험을 했다는 것은 짐작해 알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지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자랑할 것이 분명하게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만약 세상을 따라 자랑을 했다면 사람들은 모두 바울을 보고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금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는 고린도 교회도 말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러한 것들을 자랑하지 않았고 도리어 이러한 자랑들이 다 엎어질 만한 연약함이 바울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것에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바울에게는 이러한 자랑은 고사하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흠을 잡을 수밖에 없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이 가시가 어찌나 심각했던지 바울은 이를 ‘사탄의 사자’라고도 말을 합니다. 바울이 이 가시를 사탄의 사자라 하는 데에는 추측해 보건데, 이 가시가 복음 전도에 큰 방해 거리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당연히 이 가시를 놓고 하나님께 자신이 할 수 있는 대로 구합니다. 이 가시를 떠나게 해달라고 말이지요.
이 가시만 사라지면 바울은 더 완벽한 사람이 됩니다. 지성으로나 영성으로나 부족한 것 없는 바울에게 이 육신의 가시는 늘 고민거리 였을 것입니다. 복음 전도에 방해가 되는 가시였으니 더욱 고민거리 였겠지요. 이 가시만 없다면 자신이 가진 지성과 영성이 더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답은 바울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나의 은혜가 너에게 족하다. 나의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진단다”
예수님의 답은 우리의 기대를 벗어난 답입니다. 이 답에 대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수님의 관심은 바울이 육신의 가시를 없애고 더 완전해 지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가진 약함에도 불구하고 그 약한 자의 하나님이 자신이라는 데에 있으셨습니다.
즉, “너가 나를 위해 얼마나 부족함이 없는 사람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의 하나님이란 사실이 더 중요하다”라는 게 “내 은혜가 너에게 이미 충분하다”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때부터 바울은 굉장한 자유를 맛봅니다. 그 이전에는 자신이 주님을 위해 잘 갖추고 잘 준비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바울이 이 응답을 들은 후,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해 자랑하며, 그리스도의 강함을 누리게 되었다’고 증언한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더 이상 자신이 사도로서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10절을 보면, 자신이 사도로서 능욕을 받고 궁핍하며 박해와 곤고를 받으며 모두로부터 받았던 의심의 눈초리들이 더이상 바울을 누르는 짐이 되지 않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바울이 극복해 자신을 증명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 이 역시도 약함으로 심어 그리스도의 강함으로 거두게 될 장면들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만족할 수 없는 약함, 곧 그 상황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강함으로 거두실 ‘밭’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그 약함을 극복하는 것 그 이상으로 우리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소유하신 그리스도께서 그 약함이란 밭에 자신의 강함을 나게 하실 것입니다. 이는 오늘 분문이 우리들에게 주는 위로가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하루 중, 우리가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을 이미 자신의 소유로 삼으셔 약함 속에 강함을 맺으실 주님을 바라십시다.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 그렇게 자신이 약해지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바라 보는 하루가 됩시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약함이 더 이상 우리의 약함으로 끝나지 않고, 이 약함 속에 그리스도의 강함을 맺으실 주님을 바라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 약해지셨으나 그 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강함이 되신 그리스도를 더욱 바라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