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1월 5일
[본문말씀]
창세기 30장 8절
8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묵상]
경쟁, 불안, 불만족. 우리가 사는 시대를 대표하는 세 가지 키워드입니다. 이는 오늘날에만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레아와 라헬도 이 세 가지 키워드를 동일하게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나 자녀를 낳지 못해 불안한 라헬, 자녀는 낳았으나 여전히 야곱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불안한 레아. 이 둘 사이의 불안은 서로 간에 경쟁으로 이어지고, 이 경쟁은 해도 해도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낳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나 본문의 라헬과 레아나, 경쟁과 불안 그리고 불만족을 경험하는 이유는, 우리 존재를 설명함에 있어 반드시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녀가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는다면 그 자녀는 부모에게 자녀로 인정 받기 위해 ‘경쟁’하지 않을 것이며, ‘불안’하지 않을 것이며, ‘불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부모로부터 ‘자녀가 되기 위해서 조건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자녀로 인정 받기 위해 ‘경쟁’할 것이며, 인정 받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 조건을 갖춰야만 한다는 ‘불안’과 ‘불만족’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경쟁과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조건없이 우리 존재가 받아 들여질 때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더이상의 경쟁과 불안과 불만족을 멈추게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 우리가 예수님께로부터 아무런 조건도 없이 받아 들여졌다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쟁취하는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갖지 못해 불안한 인생이 아닙니다. 이미 나에게 주어진 상황들에 대해 불만족스럽게 여기며 사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를 자신의 전부로 삼으신 그리스도를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더 갖기 위해 경쟁하며, 더 갖지 못해 불안하며, 이미 가진 것들에 대해 불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은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람이 된 것은 그저 ‘꽤 괜찮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신에게는 매우 비참하며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한 기업의 회장이 사원과 같은 대우만 받아도 ‘이런 일이 있냐’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분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를 자신의 전부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생명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전부이며, 우리의 전부는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지금 나의 형편 그대로를 비참하다, 수치스럽다하여 경쟁으로 그 비참과 수치를 극복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 시도들로 그 불안을 극복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분을 바라 보십시오. 그리고 그분 안에 우리의 삶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현재 비참하다 느끼고, 수치스럽다 느끼는 그 비참함과 수치스러움을 그리스도께서 모두 자신의 것으로 가져 가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그분께서 자신을 드려 사실만큼 가치로운 존재이며,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그분의 전부가 바로 우리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전부로서, 이 시대(야곱)의 라헬도 레아도 아닌 그분의 자녀로 이땅을 넉넉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사랑 안에 거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