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욥기 33장 29,30절
29실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30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이끌어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
[본문 묵상]
욥기 33장은 엘리후의 이어지는 말입니다. 엘리후는 "고난의 목적은 파멸이 아니라 회복에 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이전 욥의 세 친구보다 고난에 대해 더 나은 입장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고난의 원인을 욥에게서 찾아 욥을 정죄하는 것보다는 더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욥의 현실에 더 적합하기 때문에 이를 고난에 대한 더 나은 입장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욥이 고난을 해석하는 기준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은 욥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겪는-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고난의 이유를 알고 싶어 하고, 고난의 목적을 알고 싶어 합니다. 욥의 세 친구는 고난의 이유를 욥의 '잘못'으로부터 찾았습니다. 엘리후는 고난의 목적을 '회복'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욥기의 주제는 고난의 이유도 아니며 고난의 목적도 아닙니다. 욥기는 고난에 대해 줄곧 '까닭이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욥기의 서두와 말미를 보아서도 분명해집니다. 욥의 고난은 하나님을 찾아온 사탄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함이 어찌 까닭이 없겠습니까?"(욥 1:9). 욥의 말미에서 욥과 친구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도 그 고난의 '까닭'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욥과 친구들은 까닭이 없다는 사실로 괴로워합니다. 어쩌면 고난보다 더 괴로운 것은 까닭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오늘 고난을 지나는 우리들에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하나님께서는 까닭 없는 고난 중에서 까닭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까닭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라 말씀하십니다. 물론 우리 각자는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까닭으로 하나님을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우리를 더 깊은 곳으로 초대합니다. 이유가 없이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유 없이도 당신을 신뢰하는 자리로 초대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이유 없이 신뢰하셨기 때문입니다. 욥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먼저 욥을 까닭 없이 신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욥을 자랑하십니다. 이는 욥을 까닭 없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까닭 없이 사랑하신 까닭에, 그분은 욥을 사탄에게 마음껏 자랑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고난 중에 욥이 보일 수 있는 실망스러움까지도 그분에게는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아니라 사랑하실 이유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고난을 지날 때 중요한 것은 고난의 이유도, 고난의 목적도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지나는 고난 중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 그분 자신이십니다. 하나님을 까닭 없이 사랑하는 자리로 초대받은 자리가 바로 고난인 것이지요.
고난 중에 끝까지 까닭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까닭이 없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신 이유는 우리를 위함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끝까지 까닭이 없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셨습니다. 그분의 그 신뢰로 인해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한 자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로 우리의 삶을 살아냅시다. 그리스도께서 까닭 없이 우리를 위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그 고난 속에서 끝까지 성부 하나님을 신뢰하셨습니다. 그분의 그 신뢰 안에 우리의 삶이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세줄요약-
1. 욥기는 고난의 까닭보다 하나님을 말합니다.
2. 하나님께서는 까닭 없는 고난 중에도 신뢰를 원하십니다.
3. 고난 중에서도 성부 하나님을 신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뢰 안에 우리의 삶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