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흙덩이에 불과하다. [사진 출처: Unsplash의 Alicia Christin Gerald]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호모데우스』에서 "무엇이 인간을 동물보다 우월하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가치를 상실했고, 가치를 상실한 인간은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렸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사회적 기여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모든 사람이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유발 하라리가 예측한 미래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인간이 직업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처럼 '괜찮은 직업'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많은 사람이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일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미래는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점점 가치를 증명할 만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미래의 전망은 사람들을 불안하고 우울하게 한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야 할 다음 세대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릴 때는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음이 난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청소년들은 점차 웃음을 잃어간다. 많은 청소년이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줄 수 있는 해답은 무엇일까?
성경은 인간의 가치를 기여도로 결정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의 형상에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인간을 가치 있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한 이유는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인간을 특별하고 가치 있게 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을 닮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허무한 데서 자신의 가치를 찾아 헤맸다. 결국 인간이 가치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과 연결된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하나님처럼 살아가도록 만들어졌다. 인간은 하나님처럼 세상을 다스리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책임을 지고 살아가도록 만들어졌다. 이 사실은 창조의 목적과도 연관이 된다. 인간이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곧 창조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다. 인간이 회복되어 사명을 감당할 때 모든 만물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질서는 교회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교회는 '대안공동체'이다. 세상에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사회와 달라야 한다. 사회는 시스템에 대한 기여도로 인간의 가치를 결정한다. 하지만 교회는 순서가 다르다. 교회는 기여도로 가치를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기여를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존귀한 자로 불러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조건을 이루어주셨다. 그 사실을 깊이 묵상할 때 우리는 참된 평안과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Harari, Yuval Noah. Homo Deus. 김명주 역. 『호모데우스』. 서울: 김영사, 2017.
라영환. 『성경의 시선으로 세상을 걷다』. 서울: 피톤치드, 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