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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번호
컴그아침묵상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게 우리의 복이다

by 권목님 · 2026.4.2.
[사진출처 Unsplash의 Boston Public Library]

[본문 말씀]
느헤미야 11장 1-6절
1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2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3이스라엘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하들의 자손은 유다 여러 성읍에서 각각 자기 성읍 자기 기업에 거주하였느니라 예루살렘에 거주한 그 지방의 지도자들은 이러하니
4예루살렘에 거주한 자는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 명이라 유다 자손 중에는 베레스 자손 아다야이니 그는 웃시야의 아들이요 스가랴의 손자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스바댜의 현손이요 마할랄렐의 오대 손이며
5또 마아세야니 그는 바룩의 아들이요 골호세의 손자요 하사야의 증손이요 아다야의 현손이요 요야립의 오대 손이요 스가랴의 육대 손이요 실로 사람의 칠대 손이라
6예루살렘에 거주한 베레스 자손은 모두 사백육십팔 명이니 다 용사였느니라

[본문 묵상]
오늘 우리가 읽은 느헤미야 11장은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그곳으로 이주하는 장면입니다. 백성들이 이주하기에 앞서 지도자들이 먼저 솔선수범해 이주하는데요. 이렇게 백성들 모두가 선뜻 그곳으로 이주하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여러 이유 중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치안상의 문제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고 성벽이 지어졌다는 건 주변국에 분명히 위협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를 포함해 주변 민족들은 노골적으로 방해를 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주변 민족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는 예루살렘에 이주해 산다는 것은 분명 불안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이 그곳으로 이주해 살고자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성전이 있고,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이는 곧 그들을 다스리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이주해 산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행위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이주해 하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고백하며 하나님을 가까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희생도 수고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이 길을 선택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들의 선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물론 희생도 수고도 필요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 일은 하나님을 왕으로 고백하는 이들에게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그분의 백성으로서 사는 길입니다. 실제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나에게 복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복은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관계가 깊다'고 할 때, 그 관계의 깊이는 수고와 희생을 수반합니다. 아무런 수고와 희생도 없이 관계가 깊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과 너희의 관계는 어떠하냐? 그 희생과 수고를 감내하면서까지 하나님을 가까이하느냐?"라고 말입니다. 만약 아무런 수고와 희생도 없이 하나님과 내 관계는 가깝다고 말한다면 이는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 질문에서 더 나아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관계에 보이신 희생과 수고를 보라"라고 말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다시 지은 성전과 성벽은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하겠다고 지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겠다고 지으신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가까이하겠다 선택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신 곁에 두시겠다는 선택이 먼저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그들이 하나님께 보인 수고와 희생이 그 관계를 이끌어 가지 않습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수고와 희생이 그 관계를 이끌어 갑니다. 때문에 오늘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이주해 사는 이 장면은 "우리를 자신 곁으로 가까이 두신 그 하나님을, 나도 가까이하며 살겠습니다"라는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을 가까이합시다.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 가까이할 때에는 반드시 희생과 수고가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희생과 수고 없이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누린다는 것은 분명 불가능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희생과 수고를 요구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먼저 희생하시고 먼저 수고하셨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그분의 하나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기 위해 그분은 하나뿐인 아들을 희생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아들 안에서 우리와 하나님이 얼마나 친밀하며 얼마나 가까운 관계인지를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그 아들 안에서 하나님 한 분만을 우리의 왕으로 가까이합시다. 다른 무엇이 아닌 하나님 한 분만을 가까이합시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삶에 어떠한 수고와 희생이 따를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 하나님과 함께 우리의 삶을 우리답게 살아냅시다. 사랑합니다.

-세줄요약-
1. 예루살렘 이주는 위험과 희생이 따르는 선택이었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기 위해 그분을 가까이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2.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에는 수고와 희생이 필연적이며, 우리의 결단 이전에 우리를 곁에 두시려 먼저 독생자를 희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3. 먼저 수고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 한 분만을 삶의 왕으로 가까이하는 백성이 됩시다.

#느헤미야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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