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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번호

[사진출처 Unsplash, 작가 Alexander Grey]

신앙의 핵심은 정성이 아니다

[컴그아침묵상] 3월 25일 

[본문말씀]

사무엘상 4장 2,3절

2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3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묵상]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돌아와 이 전쟁에 대한 복기를 합니다. “우리가 이 전쟁에서 진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에서 지고 돌아온 대부분이 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들이 찾아낸 나름의 원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실로에 있던 여호와의 궤를 전쟁터로 가져 가기로 결정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결정을 보며, 당시 이들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이들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형체였습니다. 왜냐하면 언약궤의 위치에 따라 하나님의 임재 여부가 결정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그들에게 하나님은 ‘인격’이 아니라 ‘비인격’적인 대상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비인격적인 대상으로 여기자, 그들은 나름의 공식을 세웁니다. 그게 언약궤를 가져 가자는 것입니다. 마치 부적과 같은 효능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비인격적으로 여기게 될 때,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는 ‘정성’입니다. 지금 이스라엘도 언약궤를 모시고 자신들의 전쟁터로 간다는 것은 굉장히 수고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수고를 감당하는 이유는 자신들 나름의 ‘정성’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정성에 응답하는 게 하나님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정성을 드린만큼 신으로부터 받는다’라는 공식은 모든 종교의 일반입니다. 이 공식의 전제는 ‘신이 인격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인격이 아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고, 그 신뢰할 수 없는 신을 내 정성으로 통제하려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격이십니다. 인격이란 말은 ‘신뢰’ 안에서 ‘관계’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인격이심을 매우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공식에 하나님께서는 꿈쩍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할 때, 분명 나는 할만큼 다 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바라는 대로 응답하지 않으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린 정성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성에 의해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 말을 듣는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럼 나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안 할거야. 어차피 정성으로도 안 되는데 뭐하러 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하나님을 공식으로 오해했기 떄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성을 더 드린다고, 우리가 정성을 더 안 드린다고 우리에게 더 해주시거나 덜 해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에 대해 선하십니다. 우리의 정성을 넘어 우리에게 선을 행하시는 이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는 게 바로 신앙 생활이며, 우리가 사는 삶의 여정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 안에서 하나님과 맺는 관계를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인격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신뢰할만한 존재로 인정하며 나와 함께할 때 서로의 관계는 더욱 더 깊어지며 서로로 인해 기쁨이 더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 그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깊은 관계로 가자는 초청입니다. 그 초청을 받아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성의 여부보다 우리를 더 선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선대하시는 하나님을 알 때 비로소 우리의 삶에 하나님에 대한 참된 정성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통제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러한 정성말입니다. 

우리가 무엇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지신 십자가 때문입니다. 그분의 그 사랑이 오늘을 사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뢰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정성을 조건 삼아 우리를 위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정성도 없고 조건도 없을 때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제대로 봅니다. 

“그분은 내 정성에 좌지우지 되지 않으며, 언제나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라고 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선하심 안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우리 삶의 유일한 이유가 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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