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12월 26일
[본문말씀]
창세기 23장 1-9절
1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3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5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7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8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9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
[묵상]
오늘 본문은 사라의 죽음과 아브라함이 그 묘지(막벨라 굴)를 구입하는 장면입니다. 성경 기자는 사라의 죽음을 말할 때, ‘사라가 누린 햇수’라고 말합니다.
삶은 눌림이 아닌, 누림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눌리는 삶이 아닌 누리는 삶을 원할 것이고, 실제로 삶은 눌림이 아닌 누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의 삶을 누리기 보다 눌리는 게 현실이지요.
오늘 본문은 사라가 삶을 어떻게 누렸는가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지 않지만, 아브라함이 그녀의 묘지를 준비하는 장면을 통해 삶을 누리는 게 어떠한 태도인지를 말해줍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묘지를 준비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나그네로 헷 족속의 땅에 거류하고 있습니다. 그땅은 가나안 땅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입니다.
‘약속하신 땅’이란, ‘아직’은 받지 못했을 지라도 그땅을 약속한 이가 확실한 분이시라면 ‘이미’ 받은 땅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은 비록 지금은 그땅에 ‘나그네’로 머물고 있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땅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땅에 사라의 매장지를 구입합니다. 자신의 후손들이 그땅에서 살게 될 것이니 말이죠. 아브라함에게 그땅은 아직은 실현되지 않았으나, 그땅을 약속하신 분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미’ 받은 것이나 다름 없었던 것입니다. 이를 ‘믿음’이라 합니다.
사라가 삶을 누렸다고 할 때, 핵심은 바로 이 ‘믿음’입니다. 신자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이루신 약속 안에서 사는 자들입니다. 그 약속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셔서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예수님을 통해 이미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같이 아직 그 약속을 실제적으로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이 확실한 것은 약속한 이가 확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이 약속을 받아 삽니다. 이를 ‘누리는 삶’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자의 삶은 아직 받지 못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고단 분투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것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이미 모든 것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무엇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이미 이루시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이 약속 안에서 눌림이 아닌 누림의 삶을 살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우리 삶을 챙겨야 할 때는 눌림이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삶을 챙기셨음을 알아 누리는 삶을 살게 하심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