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에도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한 가지는 감정을 느끼며 반응하게 하는 미디어이고, 또 한 가지는 멍하니 바라보게 되는 미디어이다. 그중에서 반응할 수 있는 미디어를 보여줘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멍하니 바라만 보게 되는 미디어는 인격적 반응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요즘 유튜브를 보다 보면, 멍하니 바라만 보게 되는 영상들을 접하게 된다. 해당 영상의 특징은 말과 말 사이의 간격을 최대한 없앴다는 것이다. 그런 영상을 보다 보면, 멍해진다. 생각의 속도보다도 더 빠른 말의 속도를 따라가기도 버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을 느낄 새도, 생각할 새도 없어진다. 우리가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하려면 '브레이크'(멈춤)이 필요하다.
월요일 대학원 수업 때 교회의 역할을 '브레이크'에 비유하셨다. 교회에 오면 자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설교자의 설교는 건너뛰기도 배속도 불가능하다. 서로의 반응이 상호적으로 비춰진다. 이처럼, 교회는 인격적 반응이 가장 활발히 일어나는 곳이다. 이것이 오늘날 인격성을 상실해가는 사회에서 교회가 제시할 수 있는 한 가지 대안이다.
성경은 교회의 비전을 제시한다. 성경이 말하는 한 가지 비전은 '산 위에 있는 동네'(마 5:14)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대안 사회'를 의미한다. 교회의 역할은 사회에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세상이 교회에 반감이 생기고, 기대하고, 실망하는 이유는 동일하다. 모두 교회의 역할과 관련이 있다. 세상은 교회가 대안을 제시할 때 반감이 생기고, 동시에 대안을 제시하길 기대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때 실망한다. 이처럼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세상은 산 위에 있는 동네인 교회를 주목하고 있다.
교회는 세상에 좋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럴 때 세상은 위기를 느끼게 된다. 자신들이 최선이라 믿어온 것이 최선이 아니고, 행복이라 믿어온 것이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교회를 미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영혼은 갈망하고 있다. 그들이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내면을 마주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떠난 내면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공허함이 존재할 뿐이다.
사회는 왜 바쁜 것을 미덕으로 여길까. 왜 짧은 영상(쇼츠)이 각광받을까. 왜 우리는 무수한 중독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멈추는 순간 공허와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일과 안식의 리듬을 제정하셨다. 안식은 말 그대로 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서 안식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쉴 때를 생각해보자. 유물론적 사회에서 쉼은 육체적 쉼으로 귀결된다. 몸이 일터에서 떠나 있고, 몸을 소파에 기대고 있으면, 쉼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처럼, 우리에게는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과 마음이 있는 존재이다. 예비군 훈련 같은 곳에 가면, 스마트폰을 할 수 없이 대기하는 시간이 많다. 특히나 친구들과 같이 가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할 게 없다. 분명 몸은 쉬고 있는 것 같은데, 나의 정신은 집에 가고 싶은 생각에 온통 집중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육체와 마음과 영혼은 서로 깊이 영향을 준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은 발을 동동 구르게 한다.
울림학교 아이들이 점심 시간에 TV를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깊은 고민이다. 지난주 TV를 보지 않으니 할 게 없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 또한 대안을 제시해줘야 한다. 사람들은 먹어본 것만 먹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먹어보지 않은 음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맛보여줘야 한다. 아이들에게도 놀이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은 무언가를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대안을 주는 것이다.
나의 어릴 적을 추억해보면, 동네 골목이 놀이터였다. 우리의 상상력이 있으면 모든 것이 멋진 장난감이 되었고, 우리는 다양한 인물이 되었다. 막대기는 이순신 장군의 검이 되었고, 평범한 꼬마도 볼펜으로 이마에 번개 표시만 그리면 위대한 마법사가 되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가장 좋은 공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주일에 교회 뒤편의 산책로를 가보려 한다. 먼저 가보고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마치면, 산책을 하려고 한다. 그곳에서 우리의 아지트를 만들어가면 어떨까?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보면 어떨까?
믿음은 눈을 뜨게 한다. 믿음은 모든 것을 바로 보게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자연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어릴 때 어떤 모습으로 바라봤을까? 그리고 아이들이 크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까?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만난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 모든 것이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