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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학교 이야기

영화 오디세이(The Odyssey, 2026)에 나온 '제우스의 법'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간다는 의미

by 명도사님 · 2026.8.27.
영화 , 제작 Syncopy,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출처 씨네21

영화 <오디세이(The Odyssey)>, 제작 Syncopy,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출처 씨네21

최근 오디세이(The Odyssey, 2026)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 172분이라는 상영 시간이 짧게 느껴질 만큼 영화 자체도 재미있지만, 영화의 요소들을 곱씹어 보는 재미도 있다.

특별히 내게 흥미로웠던 것은 영화의 배경이 고대 그리스라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문화와 사상은 신약 성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어로 기록되었고, 저술 당시 그리스-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오디세이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제우스의 법'이다. 제우스의 법은 최근 교회에서 한 강의와 깊은 연관이 있다. 강의에서 우리는 '무엇이 인간을 가치 있게 하는지' 살펴보았다. 이 주제는 '무엇이 인간을 동물보다 우월하게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찾은 결론은 인간의 가치는 기여도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에 있었다.

제우스의 법과 하나님의 형상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고대 그리스가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제우스의 법이라는 질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우스의 법에 의하면 누구나 나그네를 환대해야 했다. 이는 서로 간의 신뢰를 형성하게 해, 해상 무역과 거래를 원활하게 했을 것이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본 제우스의 법은 딱 그 정도까지다. 하지만 정말로 당시 사람들은 어땠을까? 그때를 살아가던 그리스 사람들도 무역을 하기 위해 신을 이용한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정말로 제우스라는 신을 믿었고, 제우스라는 신이 나그네로 변장해서 올 것이라고 믿었다. 인간으로 변신한 것일지도 모르는 신을 잘 대접하면 복을 받고, 반대로 홀대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사도행전 14장 8절에서 18절에는 그리스 사람들의 믿음이 상세히 드러난다.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한 사람을 걷게 하는 기적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그 기적을 보고, 말이 적은 바울은 제우스이고 말이 많은 바나바는 헤르메스라고 생각하여 그들에게 제사를 드리고자 했다. 사람들은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고 외쳤다. 이 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 있다. 실제로 제우스라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의 증언처럼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신 6:4)이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본 적도, 살아있지도 않은 제우스를 알고 믿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그것은 바로 제우스를 믿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제우스의 법은 한마디로 '환대'의 법이다. 만일, 제우스를 모르는 동방의 상인이 의도치 않게 고대 그리스에 도착했다고 생각해보자. 상인은 낯선 땅에서 경계심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 만난 사람들이 먹을 것도 내어주고 너그럽게 환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제우스의 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인은 제우스라는 신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지만, 제우스를 믿는 사람들을 통해 제우스에 대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제우스라는 신은 나그네를 환대하는 너그러운 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제우스의 법은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의 '정체성'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목적'이기도 하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에 의하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삶의 목적은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다. 구원을 받는 것이 목적이라면, 평생 불안에 떨며 스스로를 점검하는 삶에 매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스스로에 매여 있는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세상에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반영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말로는 어려워 보이지만, 요점은 간단하다. 쉽게 이야기 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아간다. 히브리서 13장 2절에는 제우스의 법과 유사한 내용이 기록되기도 한다. 우리가 거룩하고 선하고 아름답고 지혜롭고 온유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면,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이 이 정도에서 그친다면, 고대의 그리스의 종교와 무엇이 다른가? 기독교를 기독교 답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명령을 주실 때 능력도 함께 주신다는 것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자신의 전 존재를 내어주시는 선한 왕이시다. 십자가에서 독생자를 내어주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영을 택하신 백성에게 부어 주셨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도우시기 때문이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 거듭남은 변화보다는 탈바꿈에 가깝다. 완전히 다른 종류의 나무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거듭나기 전의 인간은 어떻게 해도 죄의 열매만 맺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는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붙어 있기만 하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거듭나기 전의 인간을 지배하는 원리는 죄의 원리 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는 의의 원리도 함께 작동한다. 그래서 죄와 사망의 법과 성령의 생명의 법이 씨름을 하지만, 결국 이기는 것은 성령의 법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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