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은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조직신학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큰 기쁨이 찾아온다. 이 글의 목표는 그 기쁨을 맛보여주는 것이다. 오늘 소개할 책은 헤르만 바빙크(1854-1921)가 작성한 『하나님의 큰 일』이라는 책이다. 바빙크는 네덜란드의 개혁신학자이다. 그를 배제하고는 개혁신학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신학자이다. 지난 학기에는 존 오웬의 『성령론』을 현장에서 배웠고, 방학 중에는 헤르만 바빙크의 『하나님의 큰 일』을 온라인으로 배우고 있다. 지난 학기에는 오웬의 글을 읽으며 경탄했다면, 지금은 바빙크의 글을 읽으며 경탄하고 있다.


헤르만 바빙크(1854-1921)의 사진과 『하나님의 큰 일』 표지
조직신학은 보통 서론-신론-인간론-기독론-구원론-교회론-종말론의 순서로 나누어 다룬다. 『하나님의 큰 일』도 이 순서를 따르고 있다. 『하나님의 큰 일』은 9장부터 '신론'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 다룬다. 오늘은 9장에 나온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다루려 한다. '하나님의 속성'이라는 용어는 말만 들어도 재미없고 딱딱해 보인다. 필자도 학교에서 배웠지만, 암기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삶에 큰 은혜가 있는 교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속성'은 '공유적 속성'과 '비공유적 속성'으로 구분된다. 실제로는 나눌 수 없지만 설명을 위해 나누는 것이다. 말 그대로 '공유적 속성'은 인간과 공유되는 속성이고, '비공유적 속성'은 인간에게는 없는 속성이다. 예를 들면, 살아 계심, 영, 의지, 능력, 도덕성(지혜, 선, 은혜, 거룩, 의, 인내, 사랑, 인자, 기쁨)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에게도 있는 속성이다. 하지만 독립적이시고, 불변하시고, 단순하시고, 영원하시고, 모든 곳에 계시다는 사실은 하나님만의 속성이다.
교리는 항상 시대와 맞물려 있다. 공유적 속성과 비공유적 속성이 등장한 배경은 무엇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항상 균형을 깨뜨리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하나님은 초월적인 분이지만, 동시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다. 초월적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공유적 속성은 부정되었다. 반면에 함께 계시다는 것만 지나치게 강조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은 부정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도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바빙크는 비공유적 속성과 공유적 속성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비공유적 속성이 공유적 속성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준다고 말한다.(203) 예를 들어, '사랑'은 하나님과 인간 모두에게 있는 속성이다. 이는 비슷하다는 것이지, 같다는 말이 아니다. 인간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깊은 사랑은 부모나 연인 간의 사랑일 것이다. 하지만 바빙크는 그러한 사랑조차도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을 아주 희미하게 비춘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204) 하나님의 사랑을 유별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 달리 무한하고 독립적이고 불변하고 단순하고 영원하고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우리의 삶과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인간관계에서 지혜, 선, 은혜, 거룩, 의, 인내, 사랑, 인자, 기쁨을 경험할 때마다 하나님의 속성을 떠올려보라. 하나님은 그보다 더 깊고 완전한 것을 가지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의 사명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닮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육체적으로 닮았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신이 없으시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묘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맞춰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닮은 것일까? 오늘 사용한 표현으로 설명하자면 '공유적 속성'을 닮은 것이다. 타락한 인류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다. 하지만 죄로 오염되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직 거듭난 인간만이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 모습을 보여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종교개혁가 루터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는가'에 대한 위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위대한 답을 발견했지만, 더 나아가지 못했다. 우리는 츠빙글리와 칼빈을 따라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바로 '하나님은 어떻게 영광을 받으시는가'라는 위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회복된 형상을 통해서이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소명을 되찾을 수 있다. 바빙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츠빙글리와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세상으로 스며들었다. 그곳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가장 가까운 곳, 곧 자신들이 속한 교회와 도시에서 개혁을 시작했다. 그들은 설교 직분만이 아니라, 예배와 권징을 회복했다. 주일의 종교생활뿐 아니라, 주중의 시민 생활과 사회생활을 새롭게 했다. 나아가 시민의 사생활뿐 아니라, 국가의 공적 생활도 바로 세웠다. 그리고 개혁은 다른 나라들로 확장되었다."(186)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다. 복음은 확장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충만해서 확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안의 충만함을 통해 세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우리의 사랑을 통해 사랑의 원형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가슴 벅찬 사명이다.
참고문헌: 바빙크, 헤르만. 『하나님의 큰 일: 개혁주의 신앙고백에 따른 기독교 신앙 교육』. 박태현 역. 서울: 복 있는 사람, 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