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스 할스, 「하들렘 노인 구빈원의 여원장들」, 1664, 캔버스에 유화, 170.5×249.5cm, 프란스 할스 박물관 , 하들렘, 네덜란드 하들렘 구빈원의 지도자들의 모습은 칼빈주의가 꽃 피운 17세기 네덜란드의 근면, 겸손, 정직이라는 가치를 보여준다.
여러분은 ‘게으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마도 바쁜 한국 사회에서 게으른 사람에게 좋은 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어릴 때 들은 '소가 된 게으름뱅이' 이야기를 보면, 현대화되기 전부터 게으름은 부도덕한 품행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적 관점에서 ‘게으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우리는 흔히 ‘게으름’과 ‘쉼’을 혼동하여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기준에서 ‘게으름’과 ‘쉼’은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성경에서 쉼은 ‘안식’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진정한 쉼은 하나님 안에서 할 수 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이 ‘평안’이고 ‘안식’이며 ‘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참된 평안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거듭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안식’하는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섬기고, 교제할까요? 이 모든 것은 육체적으로 볼 때 쉼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러나 주일에 교회에서 하는 모든 활동은 사실 ‘은혜를 공급받는 일’입니다.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것을 체험적으로 알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운데 지친 영혼이 힘을 얻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달하십니다.
반면에 게으름은 ‘나태’라고도 표현합니다. 진정한 게으름은 하나님 밖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평강의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평안’을 구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지 않는 사람에게 참된 평안이 주어질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방법은 결코 ‘우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통상적으로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것은 아직 거듭나지 않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을 데리고 교회에 나와야 할까요? 성령 하나님께서는 일반적으로 예배의 자리에서 영혼을 거듭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이성으로는 이러한 놀라운 역사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거듭난 신자라면, 자신을 거듭나게 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모든 영혼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확신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게으름에 대해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듭난 자의 특권입니다. 거듭난 자가 게으르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계시지 않는 사람에게는 ‘죄의 원리’만 있지만, 성령 하나님을 모시는 우리에게는 성령께서 심어 주신 ‘성결의 원리’도 있기 때문입니다.
불신자와 마찬가지로 신자도 죄의 성향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악한 죄에 빠질 수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죄의 성향은 성결의 성향을 사라지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이 땅을 떠날 때까지 성결의 성향을 보존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결의 성향은 우리를 거룩한 의무로 기울어지게 하고, 죄의 성향을 약화시키며, 점차 제거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영적 침체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우울증에 걸리면 입맛이 사라지는 것처럼, 영적 침체에 빠지면 은혜의 입맛을 잃어버립니다. 다윗은 죄를 지은 후 잃어버린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은혜의 입맛을 잃은 지체가 있다면, 게으름 때문은 아닌지 점검해 봅시다. 은혜를 구하는 일에는 게으르고, 세상적인 일과 자신의 정욕을 채우는 일에는 부지런하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다리가 심하게 다치면 수술 후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은혜를 되찾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은 신자도 여전히 은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은혜를 상실하면 영적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을지라도 성령 하나님께서 다시 그 은혜를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웬의 기도로 '게으름'과 '성결의 원리'에 대한 글을 마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시여, 우리 안에 새로운 성품을 창조하시어, 그것이 하나님의 생명에 속한 모든 행사의 원리와 동인이 되게 하시나이다. 그런 은혜를 사람들에게 주옵소서"1 이 기도가 울림 공동체의 사명이 되길 소망합니다.
참고 도서: John Owen, The Holy Spirit, 서문강 역, 『성령론 2』 (서울: 새언약, 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