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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학교 이야기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 자리도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일까요?

by 명도사님 · 2026.4.9.

페르미어, 「우유를 따르는 하녀」, 1657-1658, 캔버스에 유채, 45.5x41cm,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암스테르담

오늘날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평생 직장’이라는 말도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또한 의료 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지면서 은퇴 후 삶에 대한 고민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직업과 소명에 대한 물음은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고민이 되었다.

위 그림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페르미어가 그린 풍속화 「우유를 따르는 하녀」이다. 당시 네덜란드는 경제적으로 부유했을 뿐만 아니라 칼빈주의 신학이 꽃피웠던 시기이기도 하다. “예술은 시대의 자화상이다”라는 라영환 교수의 말처럼, 이 작품을 통해 칼빈주의 신학의 직업과 소명에 대한 이해를 엿볼 수 있다.

중세 시대에는 일반 직업을 소명으로 보지 않았다. 소명은 오직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임명한 자리에만 해당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종교개혁가 루터는 일반 직업도 소명이 된다고 보았다. 칼빈 역시 직업을 소명의 통로로 이해했고, 더 나아가 직업을 넘어 삶 전체를 소명의 자리로 보았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 보자. 작품 속 소녀는 신분이 낮아 보인다. 이 시기에 소명에 대한 이해가 달랐던 로마 가톨릭의 작품에서는 평범한 사람을 화면 중심에 배치한 작품이 드물었다. 그렇다면 우유를 따르는 소녀의 모습은 어떠한가? 사소한 일이지만 정성스럽고 조심스럽게 임하고 있다. 삶의 현장이 곧 부르심의 현장이라는 종교개혁 정신이 반영된 것이다.

성령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고전 7:20)는 말씀을 주셨다. 칼빈은 그의 주석에서 “만일 재단사가 다른 기술을 배우는 것이 허락되지 않거나 상인이 농사를 짓는 일로 전환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매우 가혹한 일이 될 것”이라고 해설한다. 이 말씀의 의도는 ‘직업을 바꾸는 일 자체’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직업을 대하는 태도’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직업이 소명의 통로라면 무슨 일을 하든 거룩한 일이 될 수 있다. 직업을 고르는 기준도 달라질 것이다. 임금이나 커리어보다 거룩과 사랑을 실천하는 것에 중점을 두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무시하는 일일지라도 주님이 맡겨 주신 일이기 때문에 사명감을 다해 일하게 될 것이다. 사명감이 사라져 가는 세상 속에서 주께 하듯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그리스도인은 밝게 빛날 것이다.

그렇다면 직업이 없는 삶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직업은 소명의 통로이자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선물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고정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는 없다. 누군가는 나이로 인해, 누군가는 건강 문제로 인해, 누군가는 사회적 문제로 인해 직업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삶의 자리가 소명의 자리라면 직업이 없어도 일상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틀 전 청년부 시절 나를 담당해 주셨던 존경하는 목사님을 만났다. 목사님께서는 현재 학업을 이어 가시며 가사 일을 하고 계신다. 지금은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계시지는 않지만 주어진 학업과 가사 일을 성실히 감당하고 계신다. 만일 내가 미술 작품을 그린다면 우리 목사님께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시는 장면을 그리고 싶다. 사소한 일일지라도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밥 한 공기로, 따뜻한 말 한마디로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직업 때문에 힘들어하는 성도님들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삶의 자리가 소명의 자리라는 사실이 불평뿐이었던 나의 일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어 주었다. 직업이 우리를 규정할 수 없다. 나이가 들거나 병이 들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때조차 그곳은 주님이 부르신 자리이며 우리는 여전히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

참고문헌: 라영환, 『성경의 시선으로 세상을 걷다』, 피톤치드,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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