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9월 21일
[본문말씀]
요한일서 2장 22-23절
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묵상]
요한의 서신서를 받는 교회 안에 가장 큰 문제점은 예수님의 신성은 인정하되, 그 인성은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영지주의라 하는데, 영적인 것은 거룩하고 선하며 육적인 것은 그에 비해 더럽고 악하다 주장하는 이단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가르침은 당시 교회를 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고 이땅에 오실리라 없잖아?”라며 그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들이 생겼습니다.
영지주의.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이 가르침은 사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깊숙히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 경험에 빗대어 보자면 하나님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고, 일반 음식은 ‘육신의 양식’이라 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영혼의 양식이 더 중요하다’라고 배웠던 경험이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육신의 양식을 하등하게 여긴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영혼의 양식만이 귀한 것이 되고, 영혼의 양식만을 먹는 사람을 신령한 사람이라 말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성경은 이 둘의 균형을 강조합니다. 영혼의 양식이 중요한만큼 육신의 양식도 중요하고, 육신의 양식이 중요한만큼 영혼의 양식도 중요합니다. 이 둘 모두 중요하다 가르치는 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창 1:29)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하나님의 창조는 영혼과 육신 모두입니다. 영혼만도 아니고 육신만도 아닙니다. 때문에 우리 구원의 완성은 영혼만의 부활이 아닌, 영혼과 육신이라는 전인격체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나누어 영적인 것에만 가치를 두는 영지주의는 우리들의 일상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왜냐하면, 영지주의는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을, 신앙에 있어 가치없는 것처럼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 삶에는 늘 큰 일들이 일어나는 것만은 아닙니다. 굉장히 평범한 하루 하루가 이어집니다. 영지주의는 이렇게 평범한 것을 거부합니다. 자극적인 경험들만이 신앙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모든 시간 속에서 자라납니다. 설령 그 시간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시간들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우리의 지극히 평험한 그 하루가 사실은 굉장히 영적인 하루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하루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드려 자신의 것으로 사신 하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하루는 얼마나 짜릿한 영적인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없습니다. 그 평범한 하루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로 인해 이미 지극히 영적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우리들의 평범한 하루에 이미 담긴 은혜와 의미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서 그 하루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하루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로 인해 이미 의미가 있습니다. 평범한 하루 속에서 오늘도 힘내어 믿음의 여정을 걷고, 자라나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이 자라나길 원합니다. 지극히 영적인 것이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의 하루 안에 충분함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