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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번호

[사진출처 Unsplash, 작가 Emmanuel Phaeton]

사랑은 포기를 모른다

[컴그아침묵상] 6월 5일 

[본문말씀]

사무엘하 6장 1-9절

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2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3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4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6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묵상]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 합니다. 언약궤는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기 때문에 이를 옮긴다는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것은 사울의 때에는 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이 일은 선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를 옮기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언약궤를 옮기던 소가 날뛰어 언약궤가 쓰러지려 할 때, 웃사가 언약궤를 잡게 되는데, 여호와의 언약궤를 함부로 만졌다는 이유로 인해 웃사는 죽게 됩니다.
다윗이 얼마나 좋은 마음을 품었는가와 별개로, 언약궤를 옮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을 위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사천리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까탈스러운 일이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언약궤를 옮기는 일이었습니다.

선을 행해도 상황이 따르지 않을 때
일반적으로 우리가 선을 행한다고 할 때, 만약 그 상황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낙심하기가 쉽습니다. “내가 나 좋자고 하는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상황이 어렵느냐?”라고 말입니다. 다윗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웃사가 죽자, 다윗은 언약궤를 옮기는 일을 멈춥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궤가 어떻게 나에게 오겠느냐?”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끝날 것만 같았던 언약궤 운반은 시간이 지나 다시 시작됩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다시금 옮기겠다 결심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이 낙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언약궤를 옮기겠다 다짐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 동기는 바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본전을 생각하지 않게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 그에 준하는 결과가 돌아오지 않음에도 실망하지 않고 다시금 선을 행할 수 있는 유일한 동기는 바로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본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 그 선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음으로 힘이 든 이유는 본전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 본전을 덮고도 선을 행할 수 있는 힘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드라마를 볼 때, 남주가 여주를 사랑해서 많은 일들을 합니다. 그럼에도 그 남주가 여주에 대해 본전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어떤 손해를 보더라도, 사랑으로 행한 일은 본전 생각이 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기는 일에 어려움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다시 걸어갈 수 있는 힘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앙의 동기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될 때 비로소 우리 역시도 이 길을 계속해서 걸어갈 수 있습니다. 깊은 슬픔과 다양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해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먼저였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사랑으로 행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사랑받을 만한 아무런 조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조건이 없는 우리를 그분은 사랑하십니다. 굉장히 까탈스럽고 변덕스러운 우리인데,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은 자신의 생명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본전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사랑은 이런 것입니다.

오늘도 사랑합시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우리도 오늘 하루를 살 때, 하나님을 사랑하십시다.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따라 우리도 그분을 사랑하십시다. 선을 행하되, 그 선들에 대한 보상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그분을 사랑하십시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슬픔과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말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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