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묵상]
히브리서 1장에서 천사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말했다면 3장에서는 모세보다 더 탁월하고 우월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말합니다. 사실 어떠한면에서 예수님은 천사와도 모세와도 비교할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자가 예수님을 천사와 모세와 비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시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오해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뛰어난 선지자는 모세였습니다. 모세는 탁월함의 상징과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역할을 모세보다 더 잘한 이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이러한 영향 아래 있었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스럽게 모세가 하나님과 자신들 사이의 중보자라는 생각을 했고, 오늘 본문은 그러한 교회를 향해 다시금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1절), 그를 굳게 잡으라(6절)고 권면합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보다 더 모세를 생각하고 붙잡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이루신 일이 너무 ‘거저’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내가 손으로 거둔 것만을 인정하는 세상입니다. “네 수고와 땀이 곧 너 자신”이라고 말하는 게 세상의 일반이지요. 수고와 땀을 폄하하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수고와 땀이 나의 전부가 되어 그에 준하는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굉장한 실의에 빠지게 됩니다. 반대로 나의 수고와 땀으로 거둔 보상이 크다면, 이는 누군가를 무시하는 현상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자신들의 손으로 거둔 내용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거두신 열매를 그들의 손에 안겨주시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보다는 모세를 통해 자신들이 스스로 거둔 열매를 확인(율법)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보다 더 모세를 탁월한 선지자라며 여전히 율법에 머물렀던 것이지요.
우리도 얼마든지 이와 같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손으로 거둔 것을 가지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확인하려고 한다면 말입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하나님께서 거두신 열매로 확인되며 확증됩니다. 그래서 복음입니다. 만약 우리 손으로 거둔 것을 가지고 확인하려 했다면 우리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는 형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거두신 열매를 우리의 열매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탁월하심 안에 거하며 안식하길 바랍니다. 그분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우리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예수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랑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소망의 확신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할 분 역시도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이 거두신 열매 안에 우리도 수고하며 땀 흘리는 자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